우리 겨레는 일찍이 해뜨는 동방(東方)에서 문화의 터전을 남들보다 먼저 열었다. 말하자면 문화의 원천(源泉)은 동양이었고, 동양문화의 근원은 바로 동이족(東夷族)이라고 하였으니 이 지구문명의 시조는 바로 동방국이었다(黃帝內徑).
태고에 우리 조상이었던 환인(桓因)은 지기(至氣)를 타고 놀았다(乘遊至氣; 승유지기)고 하였으니 이 '지기(至氣)'는 바로 '합기(合氣)'에서 이루어진 열매요,기(氣)를 합(合)하여 지(至)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.
말하자면, 우주에 가득한 기(氣)를 마음대로 운용자재(運用自在)하는 묘리(妙理)를 채득한 신선(神仙)의 도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.
환웅(桓雄)천황은 태백산에 3천명의 선도(仙徒)들을 거느리고 와서 배달나라를 열어 세상을 밝게(光明理世; 광명이세) 다스렸다고 하였다.
수두제단(蘇塗祭壇)에서 화백(和白)하고 참전계(參佺戒)로서 몸과 마음을 연마하여 선도(仙徒)의 세계를 이루었다고 하였다.
환웅천황은 한임(桓因)으로부터 전수(傳受)한 홍익인간(弘益人間)의 이념을 널리 실천하였으니 참전계경(治化經66條; 치화경66조)로서 심신을 연마하고 삼일신고(三一神話:敎化經366字; 삼일신고:교화경366자)로서 삼화귀일(三化歸一)의 원리를 익히고, 천부경(天符經:造化經)으로서 무궁한 조화를 터득하였다.
천신(天神)을 받드는 수두제단을 세우고 그 곁에는 반드시 경당(堂)을 세웠는데 경당에서는 미혼자제들이 모여 독서, 활쏘기, 예절, 노래, 합기 등 여섯 가지 재주를 닦았으며 이러한 합동생활에서 질서를 엄정하였다.
부모에게 불효(不孝)하거나, 나라에 불충(不忠)하고 스승에게 불경(不敬)하는 것을 3적(三賊)이라 하여 용납하지 아니하였고 또 업무에 게으르고(不動業), 명령에 순종치 않고(不迪命), 허물을 알고도 뉘우치지 않는(不悔愆) 것은 3포(三暴)라 하여 엄격히 다스렸다.
치우천황(제14세 환웅)은 구리같은 머리에 쇳덩이 같은 이마(銅頭鐵額)라고 한 것을 보면 얼마나 합기단련(合氣鍛鍊)이 되어 있는 육체였던가를 짐작하게 한다. 단군(檀君)은 신인(神人) 즉 선인(仙人)이었다. 교정일치(敎政一致)체제로서의 광활한 국토와 2천년간의 선도(仙道) 정치는 임금과 신하가 모두 신선들이었다. |